[사업소식]고한 18번가에서 배운 마을호텔의 본질 / 마을호텔 현장 탐방기 (비커넥트랩 업데이트 26.06.25))

집을 고치는 일에서, 삶을 잇는 일로

고한 18번가를 답사하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이미지는 '폐광촌'이었습니다. 한때 탄광 산업으로 북적였던 마을, 그러나 폐광 이후 사람들이 떠나고 골목의 활기가 줄어든 곳. '폐광 지역 도시재생'이라는 표현은 어쩐지 무겁고 거칠게 느껴졌습니다.

정선 구 사북탄광촌 ©근현대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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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마주한 고한 18번가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곳은 단순히 쇠락한 골목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고, 가게가 문을 열고 있었고, 주민들은 자기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을호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마을호텔을 상상하길 빈집을 고쳐 객실로 만들고, 골목을 호텔 복도처럼 꾸미고, 마을 전체를 하나의 숙박시설처럼 운영하는 모델로 봐왔습니다. 물론 그런 설명이 틀린 건 아닙니다. 하지만 고한 18번가에서 들은 이야기는 그것보다 조금 더 섬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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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 18번가 마을호텔의 핵심은 '빈집'이 아니었습니다. 핵심은 주민이 원래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식당은 식당으로, 카페는 카페로
사진관은 사진관으로
주민의 일상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마을호텔은 그 위에 새로운 이름과 동선을 부여했죠. 기존의 것을 갈아엎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마을에 있던 일을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고한 18번가에서 배운 마을호텔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었어요.



변화는 거창한 사업계획서보다
작은 실천에서 시작됐다.


고한 18번가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곳의 변화가 어느 날 갑자기 공유오피스를 만들면서 시작된 것처럼 말하면, 현장의 순서와 맥락을 놓치게 됩니다.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먼저 있었던 것은 거창한 공간 조성보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려는 태도였습니다. 골목을 치우고, 담배꽁초를 줍고, 마을 앞을 정리하고, 야생화를 놓는 일. 어쩌면 너무 작아서 사업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일들이 먼저였습니다. 하지만 지역 변화는 종종 이런 일에서 시작됩니다.


처음부터 큰 건물을 고치고,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멋진 브랜드를 만드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주민들이 자기 골목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마을, 이대로 계속 괜찮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어떨까?"



이 작은 질문이 쌓이면서 마을은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하늘기획이었습니다. 하늘기획은 단순한 외부 조력자가 아니라, 마을의 변화가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돕는 기획실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마을 안의 자원과 사람, 가능성을 읽어내고 그것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내는 역할이었죠. 고한 18번가의 이야기를 정리할 때, 마을의 기획실 같은 역할을 실제로 맡은 곳은 하늘기획이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수평적 호텔보다 먼저 있던 말 '누워있는 호텔'



고한 18번가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수평적 호텔'이죠.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호텔처럼 기능한다는 점에서 이 표현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일반 호텔이 수직으로 객실을 쌓아 올린 건물이라면, 마을호텔은 골목을 따라 옆으로 펼쳐진 호텔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 개념이 처음부터 정교한 이론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수평적 호텔'이라는 말을 알고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누워있는 호텔'이라는 표현이 먼저 나왔습니다.


저희는 이 말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을호텔은 거대한 건물 하나가 우뚝 서 있는 호텔이 아닌, 골목을 따라 길게 누워 있는 호텔입니다. 숙박, 식사, 사진, 산책, 환대가 한 건물 안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이죠.


투숙객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로 가는 대신 골목을 걷습니다. 호텔 로비를 지나 식당으로 가는 대신 마을 식당으로 갑니다.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대신 동네의 가게와 주민을 만납니다. '누워있는 호텔'이라는 표현에는 현장에서 길어 올린 감각이 있습니다. 이론이 먼저가 아니라, 마을을 바라보다가 나온 말이죠. 그래서 오히려 고한 18번가의 정체성을 더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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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있는 호텔과 딱 맞아떨어지는 18번가 지도 ©정선 고한 마을호텔 18번가



마을호텔은 주민의
일을 빼앗는 방식이 아니었다


마을호텔을 잘못 이해하면, 마을의 기존 기능을 호텔 기능으로 대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당은 호텔 조식당이 되고, 세탁소는 호텔 세탁실이 되고, 사진관은 호텔 스튜디오가 된다고 설명하기 쉽죠.

하지만 이런 표현은 조심해야 합니다. 고한 18번가의 핵심은 기존 주민의 일을 호텔 운영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민이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방문객과 연결하는 데 있었습니다.


식당은 원래 식당입니다. 카페는 원래 카페입니다. 사진관도 원래 사진관이죠. 세탁소 역시 마을에 있던 세탁소였고, 실제로 호텔 세탁실처럼 협력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세탁소를 호텔 세탁실로 활용했다'는 식의 표현은 삭제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가능했던 생각일 수는 있지만, 실제 운영 구조를 설명하는 문장으로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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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호텔 거리에 있는 식당 '국일반점'



이 지점은 중요합니다. 마을호텔은 마을을 호텔처럼 보이게 만드는 사업이 아닙니다. 마을을 호텔 운영 논리로 재편하는 사업도 아니죠. 


오히려 마을 안에 있던 일과 사람을
존중하면서 외부 방문객이
마을의 흐름 안으로 들어오도록
돕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마을호텔이 건강하려면 주민의 기존 삶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주민이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고한 18번가에서 확인한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빈집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관계'였다.



도시재생이나 마을호텔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주 빈집을 말합니다. 빈집을 고치고, 객실을 만들고, 유휴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은 분명 중요하죠. 하지만 고한 18번가의 경우, '빈집을 리모델링해 객실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단순화하면 현장의 본질을 놓칠 수 있습니다.


고한 18번가 마을호텔의 핵심 자산은 빈집 자체라기보다, 이미 그곳에서 살아가고 일하고 있던 주민과 상점, 그리고 그 관계였습니다. 



마을호텔은 빈 공간을 채우는
사업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마을의 기능을
연결하는 사업에 가까웠습니다.



마을의 식당, 가게, 주민, 골목, 야생화, 오래된 기억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방문객이 머물 이유가 생깁니다. 빈집은 그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자원일 수는 있지만, 출발점이자 본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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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매우 큽니다. 빈집 중심으로 보면 마을호텔은 공간개발 사업이 됩니다. 주민의 일 중심으로 보면 마을호텔은 관계와 운영의 사업이 되죠. 고한 18번가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마을호텔을 만든 사람들



고한 18번가의 변화는 한 사람의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민, 현장 리더, 기획자, 행정이 각자의 역할을 하며 조금씩 쌓아 올린 결과였습니다. 특히 초기에는 마을 안에서 주민을 만나고 설득하고 조율하는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현 이사장의 경우도 처음부터 지금의 이사장 역할로만 설명하기보다는, 시작 당시에는 마을 사무국장에 가까운 실무적 역할을 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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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탐방하며 만났던 기획자님, 이사장님, 이장님



마을 일은 직함보다 역할이 중요합니다. 누가 회의를 준비했는지, 누가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는지, 누가 행정과 연결했는지, 누가 갈등이 생겼을 때 중간에서 버텼는지가 중요하죠. 고한 18번가의 변화는 바로 이런 실무적 역할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한쪽에는 주민의 생활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마을의 가능성을 외부 언어로 번역하는 기획자가 있었습니다. 또 그 사이를 연결하며 실제 일을 굴러가게 만든 실무자가 있었습니다. 이 조합이 고한 18번가의 중요한 동력이었습니다.



주민 주도는 쉬운 말이지만,
어려운 과정이었다


고한 18번가를 주민 주도형 도시재생 사례라고 부르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주민 주도라는 말은 너무 쉽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늘 갈등이 있기 때문이죠. 누군가는 사업을 의심하고, 누군가는 변화가 불편하고, 누군가는 왜 우리 가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마을 안의 이해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고한 18번가 역시 처음부터 모두가 한마음으로 움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을이 바뀐다는 말은 기대를 만들기도 하지만 불안을 만들기도 합니다.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누가 이익을 얻는지,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주민들은 당연히 묻습니다.



그래서 작은 성공이 중요했습니다.


골목이 깨끗해지는 것. 마을 분위기가 조금 밝아지는 것. 외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 주민이 자기 집 앞을 다시 가꾸기 시작하는 것. 이런 변화는 말보다 강합니다. 설명회보다 강하고, 보고서보다 강하죠. 


마을의 변화는 설득만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고한 18번가의 초기 실천이 중요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보다 
중요했던 것은 '소유의 구조'



도시재생 사례를 이야기할 때 젠트리피케이션은 거의 자동으로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마을이 유명해지고 사람이 몰리면 임대료가 오르고, 결국 원래 있던 사람들이 밀려난다는 이야기죠. 


Gemini_Generated_Image_i0mscji0mscji0ms.png젠트리피케이션의 개념


하지만 고한 18번가의 경우, 젠트리피케이션을 핵심 문제로 크게 강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현장에서는 대부분 자기 소유의 공간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 임대료 상승으로 밀려나는 문제가 다른 지역만큼 크게 나타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마을호텔이 필요했다'거나 '젠트리피케이션이 큰 위협이었다'는 식의 흐름은 덜어내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여기서 배울 점은 있습니다. 지역재생에서 공간 소유 구조는 매우 중요합니다. 누가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지, 누가 운영하는지, 수익이 어디로 흐르는지는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죠. 고한 18번가에서는 적어도 외부 자본이 임대료를 급격히 끌어올려 주민을 밀어내는 구조보다는, 주민 스스로가 자기 공간을 기반으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 점은 오히려 고한 18번가 모델의 안정성을 보여줍니다.



공용 화장실보다 중요한 질문


마을호텔을 운영하려면 방문객 편의시설이 중요합니다. 주차, 안내, 화장실, 쉼터 같은 기본 인프라는 방문객 경험에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고한 18번가 사례에서 공용 화장실 문제를 핵심 과제로 크게 부각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장 의견에 따르면, 고한 18번가에서는 공용 화장실이 그렇게 큰 문제로 인식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해결 방향 역시 단순히 '확충이 우선'이라고 정리하기보다는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기초 인프라는 중요하지만, 모든 마을호텔에 동일한 처방을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화장실이 가장 시급할 수 있고, 다른 지역에서는 주차나 안내체계가 더 중요할 수 있죠. 또 어떤 곳에서는 시설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기존 공간을 어떻게 운영하고 공유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고한 18번가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특정 시설의 확충보다,
마을의 실제 조건에 맞는
운영 방식을 찾는 태도입니다.




협동조합은 돈의 균형보다
마음의 구조를 만든다



마을호텔을 협동조합 기반으로 운영한다고 해서 곧바로 소득 불균형이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도 과장해서 말하면 안 됩니다. 협동조합이 모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구조는 아니죠. 참여 정도가 다르고, 각자가 가진 자산도 다르며, 실제 수익이 발생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따라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고 해서 주민 사이의 소득 격차가 자동으로 줄어든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마을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감각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각자의 가게와 집은 따로 있지만, 



마을이라는 공동의 브랜드와 방향을
함께 고민하게 만들죠.
의사결정의 장을 만들고, 갈등을 조율하고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만듭니다.


협동조합의 가치는 소득 균등화보다 공동 운영의 경험에 있습니다. 고한 18번가에서 협동조합은 경제적 분배 장치라기보다, 마을을 함께 바라보게 만드는 그릇에 가까웠습니다.



고한 18번가에서 본
마을호텔의 진짜 의미


답사를 마치며 가장 크게 남은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마을호텔은 낡은 마을을 호텔처럼 포장하는 일이 아닙니다. 빈집 몇 채를 고쳐 감성 숙소로 만드는 일도 아닙니다. 



마을 안에 이미 있던 삶과 일을
다시 연결하는 일입니다.



고한 18번가의 마을호텔은 새로운 것을 외부에서 들여오는 방식보다, 이미 있던 것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는 방식에 가까웠습니다. 주민이 하던 일을 계속하게 하는 것. 식당이 식당으로, 사진관이 사진관으로, 골목이 골목으로 기능하게 하면서도, 그 전체가 방문객에게는 하나의 특별한 체류 경험으로 다가가게 하는 것. 그것이 고한 18번가에서 배운 마을호텔의 본질이었습니다.



마을호텔은 건물의 형태가 아닌
관계의 방식입니다.
객실의 수가 아니라 연결의 밀도죠.
브랜드 문구가 아닌
주민의 지속 가능한 일상입니다.



고한 18번가를 보며, 지역재생은 결국 '새로 만드는 일'보다 '계속되게 하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라질 것 같던 골목에서 주민들은 자기 일을 계속했고, 기획자는 그 일을 연결했고, 마을은 조금씩 다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고한 18번가의 마을호텔은 단순한 숙박 모델이 아닙니다. 폐광 이후에도 마을이 어떻게 자기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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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해주신 마을호텔 18번가 분들께 감사를 전하며-


그리고 그 현장은 우리에게 조용히 말하고 있었습니다. 지역을 살리는 일은 마을을 다른 모습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 자기 모습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돕는 일이라고요.


원문보기 링크 : https://brunch.co.kr/@beeconnectlab/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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