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소식]혁신은 마을 속에 있는데, 법은 건물에 갇혔다. (로컬 스포트라이트 26.04.18)

강진 현장에서 마주한 

마을 호텔의 제도적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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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넥트랩 목포 괜찮아 마을 탐방 중




낡아버린 법과
현장의 목소리들


누구나 스마트폰 앱 하나로 가볍게 차를 빌려 타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 그 첫 시장을 열었던 쏘카를 아시나요? 현재 국내 1위 카셰어링 서비스로 자리매김한 '쏘카(Socar)'의 시작은 10년 전 제주도, 로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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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쏘카 홈페이지


출처: 쏘카 홈페이지

당시 제주도는 밀려오는 관광객으로 수많은 렌터카 업체가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행객의 불편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차를 빌리려면 무거운 짐을 이끌고 렌터카 영업장에 직접 방문해, 직원의 안내를 받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최소 2일 이상 대여해야 했고, 반납 역시 업체의 영업시간에 맞춰야 했죠.


이때 쏘카는 고객이 겪는 페인포인트를 파악해 시장의 룰을 깼습니다. '왜 굳이 영업장까지 가야 할까?' 

쏘카는 30분 단위의 짧은 대여, 24시간 무인 대여 및 반납 시스템을 도입했고, 이 모든 과정을 스마트폰 앱 하나로 끝낼 수 있게 플랫폼을 제작했습니다. 여행객들의 수요는 높았고, 쏘카는 제주도의 성공을 발판 삼아 수도권까지 폭발적으로 확장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혁신은
한 번에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제도적 장벽에 부딪힌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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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주일보 기사 (https://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04589)


당시 제주일보 기사 (https://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04589)



쏘카가 제주도에 등장했을 때 당시 행정 당국은 쏘카의 차량들을 '불법 주차'로 규정하고 단속에 나섰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당시 렌터카 관련 법은 "차를 빌려주는 회사는 반드시 하나의 영업장(차고지)을 가져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쏘카는 고객이 편하게 차를 탈 수 있도록 제주도의 관광지, 호텔 등 관광객 밀도가 높은 주변 주차장에 차를 흩어놓았고, 국가는 이를 지정된 영업소 외 밤샘 주차로 간주하고 단속했습니다.



산업은 이미 고객과 지역을 잇는
'네트워크(면)'로 발전했는데
법은 여전히 하나의 거대한
차고지라는 '점'에 멈춰 서서
혁신의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비단 쏘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아한형제들과 뉴빌리티가 제작한 자율주행 배달 로봇은 현행법상 '차(車)'로 분류되어 보행로에 오르는 순간 도로교통법 위반이 되기도 했고, 주방 하나에 사업자 한 명만 등록해야 한다는 낡은 식품위생법 때문에 한 공간을 나누어 쓰는 '공유주방(위쿡)' 모델이 범법자로 간주될 뻔했습니다.


저희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지역에서 발견한 현장의 문제가 위의 사례들과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중앙정부가 설계한 정책이 지역의 개별적인 맥락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면, 지역의 고유한 잠재력을 끌어낼 수 없습니다. 로컬에는 이제 새로운 길이 필요하고, 그 길은 현장을 제일 잘 아는 지역이 설계하는 구조가 되어야합니다.




비커넥트랩이
현장에서 부딪히며
발견한 '진짜' 문제들




지금 로컬 씬에서 뜨거운 감자 중 하나는 '마을호텔'입니다. 그동안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수백억 원을 들여 번듯한 랜드마크를 짓던 '하드웨어 중심의 재생'이 운영 주체 부재로 유령 건물화 되는 한계를 노출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패러다임은 마을의 고유한 라이프스타일과 소프트웨어를 살리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그 대안으로 떠오른 '마을호텔'이 로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어요.


마을호텔이 이토록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는 자원을 이어 붙이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있습니다. 


054775c8db1c1.png마을호텔의 개념 (알베르고 디푸소를 예시로)

마을호텔의 개념 (이탈리아 알베르고 디푸소를 예시로)



거대한 단일 건물에 모든 시설을 새로 짓고 집약하는 형태가 아닌, 골목의 방치된 빈집을 객실로, 오래된 노포를 조식당으로, 동네 카페를 라운지로 수평적으로 엮어내어 마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호텔 플랫폼으로 작동시키는 비즈니스입니다.


이는 단순한 이론으로 남겨져 있지 않습니다. 이미 강원도 정선군 고한 마을호텔 18번가, 공주의 제민천 봉황재, 목포의 괜찮아마을 등 전국 각지에서 빈집 재생과 마을호텔 사업을 시도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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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한 마을호텔 18번가 / 공주 제민천 봉황재




막대한 예산으로 새로운 것을 짓는 대신, 마을이 가진 기존의 자원들을 수평적으로 연결해 생명력을 불어넣는 이 모델이 지방 소멸을 막을 가장 매력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비커넥트랩이 현장에 들어가 빈집 재생과 마을호텔의 기획, 운영 등을 살펴보며 마주한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했던 마을호텔 모델이, 정작 현장에서는 실거주 의무와 주차장법 같은 규제의 장벽에 부딪혀 실제 운영에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 문제를 더 깊게 파고들기 위해 비커넥트랩 정홍래 대표는 공주, 정선, 목포를 돌아다니며 마을호텔 현장의 목소리를 수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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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호텔 현장 답사 중 퍼즐랩 권오상 대표와 비커넥트랩 정홍래 대표




현장의 목소리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각 빈집에 대표님이
직접 다 실거주해야 합니다.


농어촌 지역의 빈집을 객실로 활용하기 위해 마주하는 첫 번째 장벽은 농어촌민박업법입니다. 이 법은 사업자가 해당 주택에 반드시 거주해야 한다는 '실거주 요건'을 전제로 합니다. 이로 인해 마을 협동조합이나 법인이 여러 채의 빈집을 통합 관리하는 '다점포 운영'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것이죠. 개별 가구 단위의 부업 수준에 머물러 있는 과거의 법규가 마을 단위의 '통합 비즈니스 모델'을 수용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규제 지체 현상입니다.



둘째, 한국인은 이 숙소에서
주무실 수 없습니다.


소도시 구도심(동 지역)의 빈집을 숙소로 허가받으려면 '외국인 관광 도시민박업'으로 등록해야 합니다. 법령상 외국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하기에, 정작 주 수요층인 내국인 여행객을 수용하면 불법이 되는 '제도적 역차별'이 발생합니다. 이는 소멸 위기 지역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공급자 중심의 특수 목적 규제 잣대에 갇혀 비즈니스의 시장성 상실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셋째, 차 한 대 안 들어가는
골목 구옥에 주차장을 만드세요.



빈집을 식당이나 라운지 등 상업 공간으로 용도 변경하려면 현행 건축법과 주차장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십 년 전 형성된 원도심의 비좁은 골목은 현대식 '법정 주차 대수' 확보나 소방차 진입로 마련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는 필지(점) 단위의 규제가 마을(면) 단위의 '통합 주차 인프라' 구축이라는 대안적 접근을 가로막고 있는 형국입니다.



결론적으로 현장의 혁신은 점(개별 건물)을 넘어 면(마을 전체)으로 확장되며 네트워크를 구축하려 하는데, 제도는 여전히 개별 건물을 통제하는 점 단위 규제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비즈니스 모델의 실패나 시장의 외면이 아니라, 법의 모순 때문에 지역의 기획자들과 주민들이 지쳐가는 구조적 한계. 이것이 저희가 마을호텔 현장에서 직접 목도한 모습이었습니다.




제도의 벽을 넘어선
해외 현장의 사례들




비커넥트랩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비즈니스를 지속할 수 있는 구조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 선제적으로 제도의 한계를 넘어선 다른 나라 현장의 사례들을 찾아봤습니다.


먼저, 1980년대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이탈리아의 산악 마을들은 흩어진 빈집과 동네 식당을 수평적으로 연결하는 '알베르고 디푸소(Albergo Diffuso, 분산형 호텔)' 비즈니스로 마을을 부활시킨 사례입니다. 

출처: Albergo Diffuso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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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lbergo Diffuso 홈페이지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제도의 유연함입니다. 이탈리아는 흩어져 있는 개별 건물들을 법적으로 '하나의 단일 숙박 시설'로 통합 인정해 주었습니다. 한국처럼 건물마다 별도의 인허가를 받거나 대표자가 각 집에 실거주할 필요 없이, 일정 반경 내에 있는 다수의 객실들을 하나의 마을 리셉션에서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의 판을 깔아준 것이죠.


인구 700명의 소멸 위기 산촌이었던 일본의 '고스게촌(小菅村)' 사례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150년 된 구옥을 객실로, 마을 온천을 대욕장으로 엮어내는 과정에서 이들은 한국처럼 개별 구옥의 주차장법이나 낡은 규제에 갇히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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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さとゆめ 홈페이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지역관리회사(LMC: 마을 주민들과 기획자가 함께 설립한 운영 법인)' 성격의 법인이 흩어진 빈집 소유주들을 대리하여 합법적으로 숙박업을 통합 운영할 수 있는 권한과 특례를 적용받아, 개별 건물이 아닌 '마을 전체'를 하나의 비즈니스 구역으로 인정한 덕분에 혁신이 든든한 제도의 울타리 안에서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사례들을 통해
마을호텔과 정책의 간극을 좁히고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마을호텔 비즈니스 지속가능성의
핵심 과제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개인이 아닌 제도가 응답할 때 : 
마을호텔 특례법을 제안하며



다행히 쏘카는 죽지 않고 유니콘 기업이 되었습니다. 극심한 도심 주차난을 해결할 대안이 절실했던 서울시 등 지자체가 먼저 공영주차장을 내어주며 선제적으로 길을 열었고, 결국 국토교통부도 현장의 효용성을 인정해 낡은 규제를 푸는 데 성공했습니다. 공유주방과 배달 로봇 역시, 임시로 법을 면제해 주는 '규제 샌드박스'라는 정책적 사다리가 있었기에 합법적인 혁신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마을호텔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장에서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획자와 주민들에게 "알아서 민원을 피하고 법의 맹점에서 살아남으라"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합니다.


이제는 수직적인 개별 건물의 규제를 넘어, 마을 전체를 하나의 통합된 공간으로 포용하는 '마을호텔 정책적 샌드박스(특례)' 마련이 필요할 때입니다. 무분별한 난립을 막고 기존 상권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일정한 자격을 갖춘 민간 주체와 주민들이 마을 전체의 숙박과 식음을 대행할 수 있는 '지역관리회사(LMC)' 권한을 법제화하는 것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비커넥트랩은
현장 연구를 통해 마주한
이 모순을 논문 속 활자로만
남겨두지 않으려 합니다.


어떻게 제도의 매듭을 풀지, 마을호텔을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로 어떻게 안착시킬 수 있을지 그 실질적인 해답을 찾기 위한 포럼에 참여합니다. 


다가오는 4월 21일, 전남 강진군 병영면 현장에서, 소멸위기지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리플레이스와 일본 고스게촌의 빈집 재생을 성공으로 이끈 사토유메(시마다 슌페이 대표)와 함께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마을을 살리려는 현장의 땀방울이 범법이라는 낙인으로 지워지지 않도록, 이제는 제도가 응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그 변화의 시작을 묻는 자리에, 지역의 내일을 고민하는 많은 분들의 연대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원문보기 링크 : https://brunch.co.kr/@beeconnectlab/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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